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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의 환상 (The Illusion of Ignorance)
1. 무지의 환상
환상이 쌓여감- 이해 부족- 어려움 봉착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것은 왜 그런가? 저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왜 그런가?
결론; 우리는 알 수 없다. 과연 아는 것이 가능한지도 몰라 ---> 무지(無知) 탄생
가. 무지는 최종 답안이 됨
1) 우리는 그냥 모른다.
모든 답안의 도피처, 종교, 정치- 특정 권력
2) 우리는 원래 알기로 되어 있지 않다.
(1) 종교 - 사실상의 교리
우주에는 우리가 알기를 신이 바라지 않는 어떤 비밀이 있고 이것을 탐구하는 것은 불경
탐구에 대한 물음 때문 목숨 잃음 -부르노 화형, 갈릴레오 가택연금 ,칼빈
-> 탐구에 대한 이 같은 금지가‘무지’를 바람직한 자세로 격상
묻지 않는 건 무척 현명한 태도로 정착-> 관례적 처신, 기대되는 처신 ->집단의식 형성
-도올 ;‘ 믿어 ’걍 믿어, 묻지 마, 따지지 말라는 뜻, 명확하게 하지 말고 대충 살아~
(2) 정치 - 독재체제
반대 목소리 침묵시킴 - 때로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종교와 같은 입장으로 몸을 사리는 처신으로 정착됨- 청문회... 모른다. 알지 않기도 되어 있다. 그러니 묻지 마
3) 알 필요가 없다.
몸이 편함을 택함, 왜 문제를 사서 만들지? 시끄러워지면 골치 아파? 좋은 게 좋은 거야
됐거든,
4) 모르는 게 약이다
2. 무지에 대한 인식
가. 무지-> 현실
무지에 대한 현 사회적 인용
1) 몰라 -생각 안 나, 기억 안 나, 알고 싶지 않아, 알려고 하면 다쳐,모르기로 되어있어,
2) 모르는 게 속 편해 -대충대충 좀 살자, 왜 사서 고생해, 꼬치꼬치 따지면 속 시끄럽지-넓은 문
3) 알 필요 없거든-모르는 척, 시치미 뗌, 내 알바 없지, 너는 몰라도 돼, 신경 꺼, 됐거든, 될 대로 되라 지- 침묵, 외면, 분리
4) 나랑 무슨 상관있어, 책임이 나에겐 없으니 날 복잡하게 하지 마- 책임 회피
3. 무지의 환상 다스리기
그러나 진화하는 정신mind은 그런 후퇴를 오래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겨우 몇 천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실 우주 역사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너희는 무지가 더 이상 축복이 아닌 시점에 이르렀다.
사랑은 언제나 너희가 무지의 굴레를 깨뜨리길 권한다. 사랑은 어떤 질문이라도 던지게 하고, 어떤 대답이든 찾아보게 하며, 어떤 말이든 말하게 하고, 어떤 생각이든 함께 하게 한다. 또 어떤 체제이든 지지하게 하고, 어떤 신이든 숭배하게 한다.
너희의 진실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사랑은 언제나 너희가 너희의 진실에 따라 살기를 권한다.
가. 무지의 환상 목적을 이해하기
1) 무지는 없다
'무지' 의 환상과 마주쳤을 때, 너희에게는 이 체험이 흡사 진짜처럼 보일 수 있다
무지 - 멋진 환상-모른다 함은 다시 알고, 다시 배우고,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다.
실재 무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 모른다는 건 진실이 아니다 -무지는 없다
- 실재의 삶의 효과를 위해 무지를 환상으로 이용해서 앎을 자각키 위함.
2) 겸손, 겸허, 분별, 기억
- 모른다는 환상을 이용하면 겸손의 경이
- 내가 모르는 앎이 존재하는 구나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는 앎이 있다 라는 진술 속에 들어 있는 힘
나. 무지의 환상 이용하기
1) 자신이 안다는 걸 안다
- 무지는 없다. - 무지는 진실이 아니다
- 자신이 안다는 걸 알고 있다
인류의 하나 됨과 모든 생명의 하나 됨, 모든 것의 동등성, 사랑은 조건 없고, 한계 없 고 필요 로 하지 않음을 안다......
2) 내가 모르는 앎이 있다 - 모든 것을 바꾸는 앎
무지의 환상을 이용하여 내가 모르는 앎, 모든 것을 바꾸는 앎이 있다.
->겸손을 불러냄 -> 영광을 불러내는 것
모름은 앎을 낳고, 그 모든 것을 앎은 아무것도 모름을 낳는다.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임-더 많은 이해 더 많은 기억, 더 많은 자각으로 열어줌
다. 자신의 현실을 재창조하기
무지의 환상과 마주쳤을 때
1) 세 가지 궁극의 진리 떠올리기
(1) 내 세계의 어떤 것도 진짜가 아니다.
(2) 내가 뭔가에 부여하는 의미가 곧 그것의 의미다.
(3) 내가 나라고 일컫는 것이 나이고, 내 체험이라고 일컫는 것이 내 체험이다.
2) 삼 중의 과정 대입으로 결정
(1) 환상을 환상으로 본다
->예)현재 나에게 다가온 무지의 환상이 진짜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환상으로 본다
(2) 환상이 뭘 의미하는지 결정한다
->무지의 궁구함은 내 앎을 기억하게 해 주며, 모르는 앎이 있는 것은 자각하겠다는 존재로 결정
(3)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한다.
->모르는 앎이 있음의 자각을 통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앎, 진리의 앎을 궁구하는 존재로 재창조.
4. 실예
가.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무지의 지
나. 예수님
아는 것은 안다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라.
다. 숭산 스님- 선의 나침반
오직 모를 뿐......
라. 공지영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마. 홍세화의 수요편지
1) 무지가 부른 집단 광기
무지의 두 가지
-. 자신의 무지를 아는 무지로서, 사회에 위험하지 않을 수 있다.
-.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무지로서 사회에 위험할 수 있는 무지.
2) 무지는 뻔뻔함의 토양
무지는 그 자체로 죄악이 아닐 수 있어도 뻔뻔함의 토양.
뻔뻔함은 대중의 무지(無知) 위에 피어나는 독버섯.
바. 본인의 실예
공동체 주우님, 동구안님... 삶의 피드백 특히 창조물에 대해 경로를 자각- 받침생각- 재 창조...내 삶의 창조자는 나! 기억을 되살리고, 모르는 앎이 있음을 자각... 겸손의 경이로 삶을 재창조.
5. 환상 마무리
진리는 이러하다.
1. 신은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 신은 실패할 수 없고 너희 또한 그러하다.
3. 아무 것도 어떤 것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
4. 모든 것이 충분히 있다.
5.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6. 너희는 결코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7. 너희는 결코 벌받지 않을 것이다.
8. 사랑은 조건이란 걸 모른다.
9. 어떤 것도 그 자신보다 우월할 수는 없다.
10. 너희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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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 모르는 채 있음. 따지지 않음
부지(不知);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음. 모르는 체 함. -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지(無智); 지혜가 없음.
무식(無識); 지식, 학식이나 식견을 없음.
무학(無學); 배움이 없음
무치(無恥); 부끄러움이 없음.
- 신나이 구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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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열 가지 환상'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각각의 환상이 어떻게 너희로 하여금 지금과 같은 삶을 너희 행성에 만들게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개개의 환상이 그 전의 환상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알아 챌 것이다. 많은 환상들이 서로 무척 비슷해 보이는 건, 실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든 환상들이 '첫 번째 환상'의 변형에 불과하다. 그만큼 그것은 처음의 왜곡을 더 심하게 왜곡시킨다.
또한 각각의 새로운 환상이 바로 그 전의 환상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알아챌 것이다. 결함을 고치는 데 지친 인간들은 마침내 그냥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 환상인 '무지의 환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덕분에 너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수수께끼 풀기를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진화하는 정신mind은 그런 후퇴를 오래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겨우 몇 천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실 우주 역사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너희는 무지가 더 이상 축복이 아닌 시점에 이르렀다.
너희는 이제 막 원시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참이다. 이제 막 이해의 도약을 이루려는 참이다. 그리고 이제 막 '열 가지 환상', 이것을 꿰뚫어보려는 참이다.
열 번째 환상은,
무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환상이 하나씩 쌓여감에 따라 '삶'은 갈수록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고, 인간들은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을 더 많이 던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건 왜 그런가? 저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왜 그런가? 얼마 안가 철학자와 교사들도 손을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알 수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리고 과연 아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무지'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이 관념은 많은 용도로 쓰일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확산되어 곧바로 최종 답안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냥 모른다.
인간의 제도들은 이 답안에서 도피처만이 아니라 특정 종류의 권력까지 찾아냈다. '우리는 모른다.'는 '우리는 원래 알기로 되어 있지 않다.'로 변했고, 그것은 다시 '알 필요가 없다.'로 바뀌었으며, 마침내는 '모르는 게 약이다.'가 되었다.
이것 덕분에 종교와 정부는 누구에게도 대답할 필요 없이 그들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할 권한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원래 알기로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상 종교 교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우주에는 우리가 알기를 신이 바라지 않는 어떤 비밀들이 있고, 이런 것을 탐구하는 것초차 불경이라고 선언했다. 이 교리는 종교에서 정치와 정부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결과,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제기된 어떤 물음들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시대가 너희 역사에 존재하게 되었다.
탐구에 대한 이같은 금지는 '무지'를 바람직한 자세로 격상시켰다. 묻지 않는 건 무척 현명하고 좋은 태도가 되었다. 그것은 관례적인 처신, 아니 기대되는 처신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주제넘은 의문을 갖는 것이 과거처럼 그렇게 엄중하게 처벌받지는 않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너희 행성에는 아직도 거의 변하지 않은 곳들이 남아 있다.
어떤 독재체제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동의의 목소리만 들리게 하고 반대의 목소리는 침묵시켜야ㅡ때로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ㅡ한다고 서슴없이 주장한다.
이런 야만적인 행동은 그것이 '질서 확립에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정당화되고, 국제사회의 항의 따위는 '내정 간섭'이라고 선언하는 독재 정부에게 비웃음만 당하고 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랑의 본질은 자유다.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너희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너희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
그것은 이처럼 단순하다. 이 점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더 멀리 혹은 깊이 볼 필요는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시 한번 말하겠다. 인간 체험의 핵심에는 단 두가지 에너지, 사랑과 두려움만이 있다.
사랑은 자유를 주지만, 두려움은 자유를 앗아간다. 사랑은 열어 젖히지만, 두려움은 닫아 건다. 사랑은 풍부한 표현을 불러들이지만, 두려움은 그것을 벌한다. 이런 기준으로 너희는 어떤 사람이 너희를 사랑하는지 아니면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다만,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살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이것이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너희에게 '무지'가 환상임을 말해 주기 위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희는 사랑의 본질인 '참된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배워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기억해 내기만 하면 된다. 너희는 신을 알 수 없고, 나에 대해 묻는 것조차 신성 모독이라고 들어 왔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진술은 어느 쪽도 사실이 아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서 필요로 하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내게 주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나와 '하나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들어 왔다.
너희는 나와 분리되어 있고, 서로 간에도 분리되어 있다고 들어 왔다.
너희는 부족이 존재하고, 따라서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놓고 서로 경쟁해야 한다고 들어 왔다.
너희는 이 경쟁에서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벌받을 것이고, 그 벌은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들어 왔다.
너희는 너희에 대한 내 사랑에는 조건이 있고, 그 조건과 삶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모든 조건을 알고 그것을 만족시킨다면 우월자가 되리라고 들어 왔다.
마지막으로, 너희는 이런 진술들이 틀렸다는 걸 너희로서는 알 수 없고, 진리는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너희로서는 절대 알 수 없다고 들어 왔다.
열 번째 환상인 '무지의 환상'은 너희가 모든 것을 전혀 모른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이 새롭고 너희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관념을. 이 환상은 너희가 '상대계'에서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 온 대로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자신과 서로를 상처 입히며,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시절이나 천국에서의 영원한 보상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니다. 너희는 지상 천국을 가질 수 있고, 낙원 동산에서 살 수 있다. 너희는 한 번도 쫓겨나지 않았고, 나는 앞으로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가슴속에서 이미 이것을 알고 있다. 인류의 '하나됨'과 모든 생명의 하나됨을 알고, 모든 것의 동등성과 사랑의 무조건성을 알고 있는 것처럼. 너희는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앎을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묶어두고 있다.
무지는 환상이다. 그것을 환상으로 볼 때, 너희가 모른다는 건 진실이 아님을 알 때, 그 환상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다. 너희는 안다. 그리고 너희는 자신이 안다는 걸 알고 있다.
사실 모든 선각자들이 다 그러하다.
선각자들은 자신이 안다는 걸 알고, 자신이 속한 환상의 세계 속에서가 아니라 그 세계와 더불어 살기 위해 그 앎을 이용한다. 그래서 너희 세상에서 그들은 '삶'의 모든 환상을 쉽게 창조해내고 이용하는 마술사처럼 보인다.
'모름'은 멋진 환상이고 유용한 환상이다. 그것은 너희가 다시 알고, 다시 배우고,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너희가 그 순환을 다시 한 번 체험할 수 있게, 다시 한 번 눈송이가 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자신이 아는 것을 알 수 있음을 모른다는 환상이다. 만일 너희가 모든 것을 아는데 자신이 그 모두를 안다는 것도 안다면, 실상 너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이 진실을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자, 너희가 뭔가를, 아니 모든 것을 모른다는 환상을 가져 보라. 그 순간 너희가 모르고 있지 않은 것을 체험할 것이고, 그러면 아는 그것이 갑자기 너희에게 분명해질 것이다. 이것이 겸손의 경이다. 이것이 '여기에 내가 모르는 앎,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는 앎이 있다.'란 진술 속에 들어 있는 힘이다.
이 간단한 진술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
겸손을 불러내는 건 영광을 불러내는 것이다.
너희 신학의 진보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도구는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약간의 '겸손한 신학'이라고 말하게 했다.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조금 덜 확신하고, 탐구를 계속하려는 열의와 자신이 모르는 앎,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는 앎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려는 열의를 조금 더 많이 갖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름은 앎을 낳고, 그 모든 것을 앎은 아무 것도 모름을 낳는다.
무지의 환상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아니, 모든 환상이 다 중요하다. 그것은 너희가 '참된 자신'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들이다. 그것은 '상대계'에서 '절대계'로 가는 문, 모든 것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준다.
그러나 열 가지 환상 모두가 그러하듯, 무지의 환상이 너희를 태운 채 달아나 버리면, 너희의 체험 전체, 상존하는 현실이 되어 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너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자신의 마술을 잊어버린 마술사와 같아진다. 자기 환상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환상을 꿰뚫어보는 다른 사람, 너희를 깨워 너희에게 '참된 자신'을 상기시키는 다른 사람에게 '구원'받아야 한다.
이 영혼이 진실로 너희의 구원자가 될 때, 너희 또한 진실로 남들에게 '참된 자신'을 상기시키고, 그들을 그들 자신으로 돌아가게 하는 그들의 구원자가 될 것이다. '구원자'는 '상기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구원자란 너희가 새로운 마음(mind)이 되게 하고 '신의 몸'의 구성 부분member임을 다시 한 번 알게 함으로써, 너희를 일깨우고re-mind 기억나게re-member 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구원자는 너희 자신이니, 남들을 위해 이렇게 하라. 너희는 내게 기쁨을 주는 내 님이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보낸 심부름꾼이다.
그러니 환상 밖으로 나오되 그것에서 벗어나지 말고, 환상과 더불어 살되 그 안에서 살지 말라, 이렇게 하라. 그러면 너희는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의 일부가 되지 않으리니. 너희는 자신의 마술을 알게 될 것이고, 자신이 아는 것이 될 것이다. 마술에 대한 너희의 관념은 한없이 커질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곧 마술임을 너희가 이해하게 될 때까지.
언제나 잊지 마라.
너희가 곧 마술이다.
더 이상 무지의 환상에 따라 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할 때, 너희는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겸손 자체가 너희로 하여금 비천함을 넘어서서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많이 자각하게 해준다. 이제 너희는 현자들-아는 자들-중 하나가 된다.
'무지' 의 환상과 마주쳤을 때, 너희에게는 이 체험이 흡사 진짜처럼 보일 수 있다. '무지'는 자신의 '무지'와 다른 사람의 '무지'라는 두 가지 가면 중 하나를 쓰고 나타나기 마련이다. 유형을 알겠느냐? 내가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이 '환상'들을 이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너희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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