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에 관련하여)

신나이 3 p568에
대화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세 가지 기본 지혜가 있음을 알아둬라.
1. 우리 모두는 ‘하나’다.
2. 충분히 있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 모두가 하나'이기로 마음 먹는다면, 너희는 지금 방식대로 서로를 대우하길 그만둘 것이고, '충분히 있다'고 마음 먹는다면, 너희는 모든 걸 모두와 나눌 것이다.

만일 너희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마음 먹는다면, 너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함'을 사용하길 그만두고, 그런 '문제들'에 대한 너희 체험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그런 상황들 자체가 증발해버리는 존재상태로 옮아갈 것이고, 또 그런 존재상태에서 나올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가 오해하기 쉬운 것이더군요.
이것이 ‘하는 것’을 노력하는 것 보다는 ‘되는 것’을 노력하라는 것인데 이것을 현실 도피하는 근거로 남용되는 경우가 있더군요.

즉 이것이 의무감이 아닌 자발적으로 하라는 것이어서 해야 할 일은 없어도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다는 것임.
소유나 행위보다 존재로..이것은 행동 이상의 것이며, 어떤 것을 행하는 것보다는 좋아해서 하고, 좋아해서 하는 것보다 즐기면서 하라는 것임. [爲 -> 好 -> 樂]

그래서 신나이 1 p224에서는 "너는 아무 의무도 없다. 관계에서도, 삶 전체에서도."라고 했으며,, 체험을 의식하면서 또 기꺼움의 자발성으로 창조하라고 했으며, 두려움 없이 자발적으로 자진해서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성에 의한 힘이며, 할 수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말하며[영향력의 원], 자기중심적 아울러 희생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임.

신나교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5번째인 요구환상들이 생겨난다고 함. 그러나 요구는 비효율적이지만 권유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님.
자발성을 중심으로 탈 권위주의인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고 알아보시길 권유합니다.


(참고)
너희 영혼이 어떤 환경이나 조건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걸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만일 너희가 정확하게 재표출되기를 원한다면, 너희는 영원 속에 투영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과 맞지 않는, 삶의 모든 것들을 변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바꾸기 시작하라. 그렇게 하려면 실로 엄청난 정신과 육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네가 너희 집단의 의식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라.
하지만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한다.
실패는 허구이기 때문에 모든 시도가 성공이고, 일등이나 꼴찌나 모든 노력이 똑같이 영예로운 승리를 얻는 것이라고 가르쳐라.

신나이 1 p239에 그렇다면 네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말고, 할 기회가 주어진 일을 하도록 하라.

신나이 2 p92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하라.

신나이 3 p31에 너희가 삶에서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이 되고 있는가 뿐이다. 너희가 미리 무엇이 되기로 정하는 가가 그것을 너희의 체험으로 만들어낸다.

신나이 3 p165에 그렇다. 바로 그것이 최대의 진리다. 가야 할 곳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으며, 지금 이 순간 너희가 되고 있는 바로 그 자신을 빼고는 누구도 '될' 필요가 없다.

신나이 3 p462에 네가 해야 할do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네가 될be 수 있는 건 대단히 많다.
인간 존재들은 오랫동안 '행위'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왔지만,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참된 변화는 언제나 '행위' 차원이 아니라 '존재'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너희가 지금 되어 있는 상태를 바꿀 때까지, 그것을 둘러싸고 너희가 취하는 행동을 바꾸지 않으리란 건 명약관화하다.
너희가 조금이라도 다르게 행동하고자 한다면, 너희는 먼저 환경 안의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누군지에 관한 관념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니 그것은 의식의 문제다. 그리고 너희가 의식을 바꿀 수 있으려면, 너희는 먼저 의식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침묵하길 그만둬라. 큰 소리로 말하고, 소란을 피우고, 문제를 제기하라. 그렇게 하면 너희의 집단의식까지도 일부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니.

신나이 3p470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곤 거기에 개입하지 않는 것뿐임을 그 과정을 이해하는 고진재로서는 절대 걱정하는 일이 없다.

신나우 p493에 너희가 생존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공존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다] 너희의 생존은 보장되어 있다. 너희는 영원히 그래 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신나교 p22에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되는 것뿐이고, 너희가 되어야 하는 건 오직 나뿐이다. 이조차도 의지 행위가 아니라 단순한 인정일 것이다. 필요한 것은 행동이 아니라 오직 받아들임뿐이다.

신나교 p75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는 한, 너희는 그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신나교 p176에 다섯 번째 환상인 ‘요구의 환상’은, ‘참된 자신’을 알고 체험하기 위해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체험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 어떤 일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완벽한 앎에 이르는 건 너희가 삶을 제대로 굴러가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그런 일들을 할 때만 가능하다.
정해진 대로 행동하고 명령에 복종하고 규칙을 따랐던, 아주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은 다음의 세 마디로 너희에게 충고할 것이다.
‘규칙을 따르지 마라.’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빠르고 분명하게 충고할 것이다.
‘선 바깥을 칠해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가슴에 귀를 기울여라.’
‘어느 누구도 너희에게 뭘 하라고 시키지 못하게 하라.’
이처럼 삶의 끝에 서면 너희 또한 자신이 했던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중요한 건 그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뿐이다. [태도]
너희는 행복했는가? 다정했는가? 자상했는가? 남들을 보살피고 동정하고 이해했는가? 너그럽고 잘 베풀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했는가?
‘요구의 환상’, 즉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관념은, 너희가 너희 몸과 함께 있는 동안, 너희 마음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신나이 2 p76에 삶이란 걸 하나의 시험, 시련, 너희가 가치 있는지 알아보고, 너희 역량을 시험하는 시기로 믿는다면, 그때부터 너희 신학은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삶이란 걸 하나의 기회, 너희가 가치 있음을(그리고 항상 그래왔음을) 발견하는, 즉 기억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믿는다면, 그때부터 너희 신학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신나이 3 p133에 너희 키가 150센티미터일 때 180센티미터'일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너희는 180센티미터일 수 없다. 너희는 오직 있는 그대로, 150센티미터'일' 수만 있다. 180센티미터로 자랐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너희는 180센터미터'일' 것이다. 너희가 180센터미터일 때, 그러면 너희는 180센티미터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완전 자각의 상태에 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너희는 완전 자각 상태에 있는 존재들이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믿으려 애쓰지' 마라. 대신 완전 자각의 상태로 옮아가고자 하라. 그러면 믿음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고, ‘완벽한 앎’이 자신의 경이로움을 펼치리니.

신나이 3 p569에 나는 아무 것도 가질 필요가 없고,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으며, 아무 것도 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되고 있는 것을 빼고는.

신나이 3 p570에 너희가 '되기'를 추구하지 않고, '되어 있음'에서 나올 때 모든 게 변하고, 모든 게 뒤집힌다. 너희는 '되어 있음'에 이르게 '할' 수 없다. 너희가 행복해'지려고' 애쓰든, 현명해지려고 애쓰든, 사랑이 되려고 애쓰든, 혹은 신이 되려고 애쓰든, 행함으로는 '거기에 이를' 수 없다. 하지만 일단 '거기에 이르고' 나면, 너희가 멋진 일들을 할 수 있으리란 건 사실이다.
여기에 ‘신성한 이분법’이 있다. '거기에 이르는' 길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냥 자신이 이르고자 하는 곳에 있어라! 그건 이토록 간단하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행복해지길 바라느냐? 행복하라. 현명해지길 바라느냐? 현명하라. 사랑이길 바라느냐? 사랑이어라.

신나우 p527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제가 하는 일이 아닌가요?
아니다. 그것은 네가 ‘되어 있는’ 것이다. 너는 그 메시지를 할do 수는 없고, 다만 그 메시지가 될be 수만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인간 행위
human doing가 아니라 인간 존재human being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메시지를 자신으로서 전하는 것이지, 그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가 전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 자체가 그 메시지다! 이것이 행동하는 너희의 영성이다. 모르겠느냐? [솔선수범]
너희 메시지는 살아온 자신의 삶이고, 너희가 퍼뜨리는 그 말은 자신인 것이다. [내 말을 문지방 넘기 전에 다 잊어라.]
‘그리하여 말씀은 육신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죠. 하지만 이게 그 뜻이라고요?
그렇다.
제 말은 제가 어떻게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냐는 겁니다.
너희는 내 말을 가지고 있다.
너희는 자신 속에 내 말을 가지고 있다. 너희는 그야말로 육신이 된 신의 말씀이다. 이제 오직 그 말만을 하라, 너희 영혼이 치유되리니. 그 말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말에 따라 살고, 그 말이 되어라.
한 마디로, 신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