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숭고한 해석?

1. 원문 : Friendship with God, p.114

Remember that the purpose of life is to re-create you're a new in the next grandest "version" of the greatest vision ever you held about Who You Are.

2. 번역 : 신과 나눈 우정, 158쪽

삶의 목적은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해석"으로 너희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임을 잊지 마라.

3. 재해석

삶의 목적은 너희가 지금껏 '자기'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버전(차원)"으로 너희 자기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임을 잊지 마라.

4. 설명

신나이 시리즈 전체에 걸쳐 직접 확인한 것만으로도 30회 이상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부분에 대한 오역으로 인한 독자들의 오독으로(일부 제대로 삶에 적용하는 분들도 계셔서 오역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의 오독으로 인하여 신나이 전체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많음을 관찰하게 됩니다.

글쓴이인 본인도 신나이를 읽고 몇 년 동안이나 관련 부분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것을 뽐내고자 함이 아니라 몇 년 동안의 오해 속에서 겪게 된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된 이해와 얻게 된 교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역자의 의도를 헤아려 보겠습니다. 역자께서 "version" 을 번역함에 있어, 번역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신 주우님께 들은 내용입니다만, 이를테면 삼국지를 예를 들자면 원문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이문열님과 김홍신님이 각각 번역과 평을 보태어, 삼국지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이문열 "판"이니, 김홍신 "버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세간에 떠도는 동일한 내용의 우스갯소리에 맹구 버전, 최불암 버전 식의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쓰임들에서 그 의미를 (존재의 관점으로)"해석"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역자께서 표현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즉 "version"이라는 것을 원판을 두고 개별 존재들이 새롭게 해석해낸 변형이나, 그 개별 존재 특유의 스타일이나 방식으로 재해석된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겠으나, 이 의미 속에는 새로운 해석이 원판보다 더 나은 것인지 또는 성장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원형과 유사한 수준에서 각색된 새로운 방식이라는 의미가 더 짙게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version"에 대한 이런 번역은 삶의 목적을 "실천(행동) 없는 해석"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오해할 소지가 높습니다.

이는 신나이를 제대로 보신 분들의 일관된 지적이기도한, "re-member"에 대한 주석에서 "기억"이라고 옮겨놓은 경우와 동일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실제 문맥을 잘 살펴보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remember"(기억)가 아니라, "re-member"(재-구성)입니다. 이 점은 신나이 다른 부분을 찾아봄으로써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인데, 다른 문장에서 "기억"이라는 의미로 쓸 때는 분명히 "remember"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와는 다른 의미인 "재구성"을 의미할 때는 항상 "re-member"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삶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억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밟히는 것이며, 삶은 자신의 앎에 대한 "적극적 체험"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된 존재"가 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앎의 단계에 이르고 다시 체험하고, 존재가 되는 끊임없는 재창조 과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역된 부분 또한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위대한 전망에 대한 수평적 해석만이 아니라, 다음 번 가장 숭고한 버전(차원)으로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이 바로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지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자제품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버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요즘의 핸드폰이나 MP3플레이어는 동일한 브랜드로 시일이 지날수록 지난 것보다 좀 더 나아진 기능으로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롭게 등장합니다.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핸드폰 신 모델 또는 새로운 버전이 나왔느니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이는 소프트웨어(컴퓨터 프로그램) 분야에서는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항상 이전의 그것보다 좀 더 나아진 것을 만들기 위해, 새로 고치고 수정하는 등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그것의 버전을 올려 갑니다. 많은 분이 잘 알고 계시는 문서작성 프로그램인 아래한글도 1.0에서 시작하여, 2.0 -> 3.0 -> 815 -> 워디안 -> 2002 -> 2004를 거쳐 현재는 2005 버전으로 꾸준히 업그레이드 되어왔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새로운 버전(차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개발자들이 연구개발 중입니다.

이와 같이 나 자신에 대한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숭고한 차원으로 나 자신을 영원히 재창조해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랍니다. 아래한글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최초로 개발한 분이(드림위즈의 이찬진 사장이지요) 자기 집에서 꼼짝도 않고 오로지 아래한글 1.0 버전에 대한 다음 번 숭고한 "해석"만을 하고 계셨다면, 지금 이 문서가 작성되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한, 이전 버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편리하고 뛰어난 기능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사용자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아래한글 2005 버전은 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것이 제공하는 새로운 차원의 체험 또한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최초 개발자는 최초의 버전 개발 이후 해석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지녔던 위대한 전망(아래한글 1.0)의 그 다음 차원인 버전 2.0, 3.0, 815, 워디안, 2002, 2004 등 그리고 현재의 2005 버전까지 새로운 고안을 계속 해왔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후, 이전의 버전들을 재구성, 재창조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개발 작업이라는 실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 문서는 아래한글 2005 버전으로 작성되고 있는 것이랍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현재에도 이 과정은 멈추지 않고, 아래한글 프로그램은 지금의 가장 위대한 전망(버전 2005)의 다음번 숭고한 차원(새로운 차기 버전)으로의 재창조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토록 끊임없이 진행되는 삶의 과정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맥락은 지금의 전망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에 대한 체험이며 실천이며 실현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나이가 실제 전달코자 했던 의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요컨대 영혼이 진정 바라는 것은 아는 것(기억)이 아니라, 삶을 통한 체험으로 그런 앎의 존재로 자신을 재구성함으로 얻는 가장 위대한 기쁨이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삶의 과정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을 고귀한 것이라 말할 수 있고, 또한 감사히 여길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모두와 모든 것이 내가 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므로.


5. 관련

5.1. 신나이 한국모임 사이트 내 "묻고답하기" 리플 중에서

아래 글에서도 신나이의 번역 그대로인 "해석"이라는 표현으로 쓰여 있지만, 실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일상의 적절한 실례로 잘 설명한 글이기에 도움일 수 있겠습니다.

  • 질문: 특히나, "전망"의 뜻과 "해석"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 제목: Re>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다시 한 번 더 여쭙니다.
  • 이름: 김종률, 등록일: 2000-05-23 00:36
  • 출처: 신나이 한국모임 http://www.cwgkorea.net/ - 묻고답하기 게시판 83번 글

우리의 삶 전체는 재창조의 과정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재창조를 이루어 가는가 하는 것은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그 방법을 알아차릴 것이고 깨어있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불러오고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재창조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을 재창조 해갈 수 있는지 그 최상의 방법을 일러주고 계십니다. '자신이 지녔던 위대한 전망'이란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 라는 물음에서 되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최상치의 선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를 선택하게 되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기회, 곧 경험을 불러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 속에서 체험하는 모든 사건들인 것이지요. 이 체험들은 우리를 자각으로 이끌어가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건은 사건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자각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이 자각이 바로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인 것입니다.

이것을 신나이 1권에서는 "신은 경험을 통해 말씀하신다." 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12월 저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교회건물 주인께서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온갖 욕설을 퍼 부으며 교회를 비우라고 요구했습니다. 30분간 욕을 퍼붓는 주인에게 감사하다고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신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사건 속에 담겨진 의미가 무엇입니까'

신은 즉각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해석할 수 있는 최상의 해석을 하라. 그러면 그대로 되리라.'

그래서 저는 수행을 위한 새 집을 마련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는 저와 함께하는 모든 영성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들도 모두 저와 같은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는 돈 한 푼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 현실과 관계없이 최상의 해석을 했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에 50평 되는 수행센터를 건립하고 있습니다. 6월 7일에 입주할 것입니다.

'위대한 전망'이란 '되고자 하는 자신'이라면 그 전망을 이루는 것은 '가장 숭고한 해석'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가장 숭고한 해석'의 방법은 모든 사건을 '되고자하는 자신을 이루어 가는 최고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재창조해가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방법인 것입니다.

말은 많았는데 제대로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님과 하나의 존재로 계시는 신께 여쭈어 보십시오. 그것이 답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일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_^ 빛과 사랑의 포옹으로~ NAMASTE!

심성당 김종률 드림

5.2. 신나이 시리즈

아래는 신나이 시리즈 전체에 걸쳐 위 문장이 언급된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한글 신나이에서는 모두 "가장 숭고한 해석"으로 되어 있으나, 아래 문장들은 "해석"을 "차원"으로 변경한 것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래 발췌 부분에 대한 정확한 출처는 양이 많은 관계로 전체 기입하지 않았습니다.


1. 나는 너희 모두가 진화하려 하고, 영적으로 성장하려 하며, 「하나됨」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걸 안다. 너희는 지금껏 자신이 자신에 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자신을 체험하고자 한다. 너희는 개개인으로서도, 한 종(種)으로서도, 이것을 추구한다.

2. 너희 삶이,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이 아닌 다른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게 하라.

그렇다면 네가 지금껏 너 자신에 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은 무엇이냐? 그건 네가 언젠가 위대한 스승이 되겠다는 것 아니냐?

3. 공식 선언은 전망을 갖는 최고 형태다.

네가 지금껏 자신에 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version에 따라 살아라. 그것을 선언함으로써 그렇게 살기 시작하라.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첫 단계는 그것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4. 「자신이 참으로 누군지」 결정하고 선언하며, 창조하고 표현하며, 체험하고 성취하는 것.

너희가 지금껏 「참된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순간순간마다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이 되는 데 있어 너희의 목적이고, 바로 이것이 삶 전체의 목적이다.

5. 나는 모든 단일 순간마다 나 자신을 재창조하길 원한다. 나는 내가 지금껏 「나 자신」에 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을 체험하길 원한다. 그리하여 나는 너희를 창조했다. 너희가 나를 재창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은 우리의 성스런 과업이고,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바로 그 이유다.

6. 삶 자체가 공동선이다. 너희는 살아 있는 것 자체로 공동선에 기여하고 있다. 영혼이 물질형상으로 있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런 형상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하는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위대한 희생이다. 설사 전체가 자신을 체험으로 알고,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버전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고, 나아가 즐겁기까지 하다 해도.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7. 굳이 대립물을 불러들여서 제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을 창조하고 체험할 필요가 없군요!

8. 내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 말이군요.

9. 삶의 목적은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너희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임을 잊지 마라.

10. 삶이란 재창조 과정이다. 나는 지금 너희에게, 너희가 지금껏 학교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학교」 체험을 재창조할 수 있도록 세상에 힘을 보태길 권하고 있다.

11. 지금이라는 모든 순간들마다 네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너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라. 이렇게 할 때 나는 찬미 받으리니.

12. 새로운 이유로 네 삶을 살아라. 삶의 목적은 너희가 삶에서 받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너희가 삶 속에 집어넣는 것과만 관계가 있음을 이해하라 이것은 인간관계들에도 적용된다.

삶의 목적은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참된 자신」을 선언하고, 「참된 자신」이 되고, 「참된 자신」을 표현하고 이뤄 내고 체험하고 아는 것, 이것이 삶의 목적이다.

이것은 너희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특정한 어떤 사람에게서 뭔가를 받는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너희가 남의 것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서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13. 네게 일어난 어떤 일도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다. 그것들은 너 자신이 체험하고 알려 했던 것을 체험하고 알며, 네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을 체험하기 위해서 너 스스로 불러들인 것들이다.

14. 너희 사회와 너희 종교들은 갱생의 희망도 없이 벌 받을 필요만을 부각시키는 죄의식에 대해 가르친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삶의 목적은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각각의 순간마다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15.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준 그 모든 도구들과 선물들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너희더러 너희 현실을 구성할 수 있게 해주고,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너희 체험을 창조할 수 있게 해주는 창조 에너지라는 선물과,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 게 좋을 순간들에 너희더러 진실을 알게 해주는 온화한 지혜라는 선물과, 너희가 조건 없이 남들을 축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고, 그들에게 그들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따라 살 자유를 부여해주며, 네 신성한 자아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너희 각자가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할 수 있게 해주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선물을.

너희에게 말하노니, 우주에는 창조에너지와 온화한 지혜, 순수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신성한 힘」이 있다.

신을 활용한다는 건, 너희가 이 신성한 힘을 사용한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16. 저는 이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은 지금이라는 개개 순간들마다 당신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지금껏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렇게 하는 건 우리 속에서, 우리로서, 우리를 통해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곧 당신입니다. 우리는 신의 몸을 이루는 구성부분들입니다. 우리는 「신을 숭배하는」 신입니다.

17. 너희는 모든 일을 자신의 목적에 비추어 행한다. - 그리고 사실 너희 삶의 개개 순간들에서 너희의 목적은 자신이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사는 것이다. 너희가 창조 에너지를 사용할 때, 너희는 신이 지금의 신 이상이 되도록 돕고 있는 것이고, 신이 지금 신 자신에 대해 체험하려는 바 이상이 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18. 그러니 이번에는 자기 연민이라는 미궁과 자책이라는 미로 속에서 다시 길을 잃는 일이 없게 하라. 그보다는 차라리 네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자신을 불러내라.

19. 그 사이 너는 계속해서 결정들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결정들 중 일부는 예전 상태로,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바꾸는 결정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너희는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을 뿐이다!

삶 전체가 재창조 과정이다. 신의 가장 큰 기쁨이 이것이다. 이런 게 신의 재창조다!

그런데 이것은 너희 삶에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한번 생각해 보라, 이것은 놀라운 계시다. 너희는 오직 바꾸기만, 오직 진화하기만 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바꾸는가, 무엇으로 진화하는가는 너희에게 달렸다. 하지만 너희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건 기정사실이다.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고, 이것이 삶인 것이며, 신인 것이고, 너희인 것이다.

삶, 신, 너희 = 변하는 것. 과정

20. 이제 너희가 깨어날 때가 코앞에 왔다. 너희가 언제 자신을 갱생시킬지, 언제 자신을 재창조할지는 너희에게 달렸지만, 너희는 이제 자신에 대해 지금껏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려 하고 있다.

21. 삶은 영원하고, 우리 중에 오직 하나만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 진리는 너희가 살면서 해 온 그 모든 일들을 의미 없게 만든다. 너희가 이 두 진리를 이해할 때, 그 진리들은 너희 삶을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의 영광스런 표현으로 바꿔 줄 것이다.

삶은 영원하고, 우리 중에 오직 하나만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 진리는 모든 것을 요약해주고, 모든 것을 바꿔준다.

삶은 영원하고, 우리 중에 오직 하나만이 존재한다.

너희가 알아야 할 진리는 이 두 가지뿐이다.

22. 무엇보다 이제 가서 너희의 사랑에 따라 살아라. 그냥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끝내지 마라. 너희가 인간과 천사의 언어로 말하면서도 사랑을 갖지 않는다면, 너희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일 뿐이다. 너희가 예지력을 갖고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갖지 않는다면, 너희는 지금껏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은유하다. 사랑은 시기하거나 뽐내지 않고, 사랑은 거만하거나 무례하지 않다. 사랑은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사랑은 안달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사랑은 옳고 그름을 모르니, 그릇된 것을 즐기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걸 참고, 모든 걸 알며, 모든 걸 견디고, 모든 걸 받아주지만, 사랑은 용서받아야 할 어떤 상황,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하니,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사랑은 끝이 없다. 하지만 너희의 예언이라면 그것은 쇠(衰)할 것이고, 너희의 언어라면 그것은 그칠 것이며, 너희의 지식이라면 그것은 자라 바뀔 것이다. 지금 너희의 지식은 불완전하기에, 모든 것이 완벽임을 너희가 마침내 깨달을 때, 너희 삶의 다른 모든 불완전한 것들처럼 불완전한 지식도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도다.

그때는 우리가 거울 속에서 흐릿하게 보았지만, 이제 우리는 친구이니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 그때는 너희가 부분만을 알았지만 이제는 내가 너희를 완전히 이해하듯이 너희도 나를 충분히 이해한다 신과 우정을 나눈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23. 우리가 그 재단에 ‘재창조’라는 이름을 붙인 건 우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우리의 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24. 일단 너희가 「환상」의 목적을 이해하고 나면, 자신의 목적이 실현될 때까지 너희는 절대 「환상」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목적은 「참된 자신」을 알고 체험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음에 자신이 되려는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희의 역할은 「지금」이라는 모든 각각의 「순간」에 너희가 「자신」에 대해 지금까지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웅대한 차원으로 너희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진화라고 불러온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너희에게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그것의 일부가 아닐 수 있다.

25. 「환상」의 목적은 너희가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웅장한 해석으로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도록 제한된localized 문맥 영역(전체와 연결된 하나의 부분, 동일한 이치와 원리에 입각한 부분, 홀로그램 우주, 작은 것이나 큰 우주나 동일한 원리로 작동, 진리는 하나)을 제공하는 것이다.

26. 나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게 했다. 너희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으로부터 자신을 계속해서 창조하고 있다. 너희는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웅장한 차원으로 자신을 계속해서 재창조하고 있다. 너희는 순간마다 새로 태어난다. 다른 모든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27. 아마도 너희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 조건이 나는 아니야. 나는 내 핸디캡이 아니고, 나는 내 직업이 아니고, 나는 내 재산이나 가난이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나란 사람은 이게 아니야.」

그런 선언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놀라운 체험과 놀라운 결과를 일궈냈다. 그들은 「조건의 환상」을 이용해서 「자신」에 대해 지금껏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웅장한 차원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했다.

남들이 싫어하는 삶의 조건을 도리어 축복하는 사람은 이런 조건을 자기 존재의 진실을 보고 선언하게 해주는 위대한 선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8. 삶은 무의미하다.

많은 인간들이 이 진실을 받아들이길 어려워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선물이다. 나는 삶을 의미 없게 만드는 것으로, 너희에게 모든 것의 의미를 결정할 기회를 주었다. 삶의 모든 것과 관련하여 자신의 결정으로 자신을 규정할 수 있도록.

사실 이것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를 체험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이런 게 바로 자기 창조 행동, 너희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웅장한 차원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너희한테 일어나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자문하지 말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너희가 선택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너희가 결정하라. 만일 의도를 가지고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면, 그 모든 걸 꾸며내면 된다. 사실 너희는 그렇게 하고 있다. 너희는 자신이 그렇게 하는 이유, 즉 상황이 그런 식으로 벌어지는 모든 이유를 꾸며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의식하지 않고서 이렇게 하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의식하면서 마음을(그리고 너희 인생을)결정하라!

29. 너희가 이번 생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 지금껏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웅장한 차원을 표현하고 체험하는 것임을 알아라. 만약 너희가 이것을 의식 차원에서 체험하지 못하면, 즉 이것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것 같다면, 너희는 내가 지금 너희에게 보내는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도 적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 중 어떤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30.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점점 더 많이 우리가 자신에 대해 지금껏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웅장한 차원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기로 결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