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 #3

당신이 되어 있는 모든 것은,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에 당신은 되고 있습니다.

어떤 주어진 순간에 당신이 걱정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즐겁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귀찮아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받고 있다면, 당신이 그렇게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도움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파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현명하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이 목록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됨됨이란 어떤 사람이 존재하는 ‘상태’이지 그 사람이 취하고 있는 행동이 아님을 이해하세요.

당신은 행복을 행할 수 없고, 당신이 되기로 결정하는 것에 따라 당신은 단지 행복한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학대받거나, 아프거나, 괴롭거나를 행할 수 없고, 당신은 오직 그런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되게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들 주변에 일어나는 것들이라고 믿습니다. : 즉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들이 하고 있는 것 때문이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일으키게끔 당신이 결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든 선택입니다.

여기의 전체 사건을 둘러싼 복잡성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선택한 거의 대부분이 너무나 자동적이고 과거 체험에 깊숙이 근거하고 있어서, 당신으로서는 그것들이 지금은 조절불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치 다른 사람들의 행동, 즉 외부에서 일어나는 체험이 자기 내부로 반응을 일으키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그러나 진실은, 당신이 자신을 발견한 상태대로 있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을 마스터한 스승들은 당신과 다르게 선택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으니, 신과 나눈 이야기를 참고하세요.)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존재됨은 선택된 것이지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14쪽에 써놓았던 어떤 것이라도 되기를 선택합니다. 당신이 그걸 선택한 이유는 다른 문제입니다.― 다른 책의 주제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점은 알고 있습니다. : 선택은 강요되지 않았습니다. 종종 선택이 강요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단순히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어떤 ‘존재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이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존재 상태란 행동이 아니고 느낌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 특정 방향으로 느낌을 가지기로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당신은 바로 지금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느낄지를 결정할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적 만남의 심오한 비밀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선물이기도 하고, 거대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 도구로 인해 모든 우주가 당신에게 열려있고, 진정 되고 싶은 자기가 되고 경험하길 언제나 원했던 모든 자유가 당신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진리입니다. (일체유심역一切唯心造)

이 진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원리를 실현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3단계로 되돌아가세요. 2단계에서 선언했던 그 ‘존재 됨됨이’로 옮겨가기를 선택하고, 당신이 하고 있던 것과 관계없이 그렇게 되기를 선택하세요.

이것이 사람들이 ‘건전한 생활상’으로 옮겨가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테리 코울-휘테이크가 쓴 훌륭한 책 제목이기도 한, ‘당신이 현재 있는 곳’에서 ‘당신이 되고자 하는 곳’으로 가는 내면의 길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서, 당신으로서, 당신을 통해서 경험하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존재 됨됨이’를 선택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되어 계세요. 어떻게 그러냐고요? 그것은 집중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주의력을 집중하고 있는 곳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로써 ‘존재 상태’ 하나를 시도해봅시다. ‘평화로움’을 선택해 봅시다. 단지 이번 연습의 목적으로써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당신은 ‘평화로움의 상태’에 있기를 바라고 그리고 선택한다고 칩시다.

좋습니다. 잠시 동안 평화로움에 대해 집중하여 봅시다. 평화로움과 접촉하세요. 무엇이 느껴지는지 살펴보세요. 책을 내려놓고서 잠시 동안 긴장을 풀고, 바로 지금 평화로움의 자리로 가세요.

좋습니다. 지금 평화롭게 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또 오늘 나머지 시간 내내 평화가 되기로 선택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고 여깁니까? 당신의 언약을 잊지 않고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언약을 잊지 않고 있으면서 평화가 되기로 한 당신의 목적에 집중하고 있게 되면, 당신의 발견할 것은 몸이 자동적으로 그런 존재됨을 경험하도록 당신을 돕고, 허용하는 사건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당신 몸이 일으킬 사건은 당신이 지금 선택과 상반된 것이면 무엇이든 당신에게 접촉시키거나, 혹은 당신이 주목하게 하는 것입니다.(원리 4에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 다음에는 당신의 몸은 당신을 평화로 이끌고, 평화롭지 않은 것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이 편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속임수 방식을 이용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시끄러운 방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고, 오늘 밤 TV 저녁 뉴스를 잊어버릴 수도 있고, 갑자기 어떤 음악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것은 더욱 더 포착하기 힘든 속임수를 부릴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 소음을 막아버리는 방법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당신이 슈퍼마켓으로 가면서 뒷좌석에서 법석대는 아이들의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음이 가라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숨 막히는 더위를 다른 방법으로 무시할지도 모르는 것이고, 또는 전에는 고통스러웠던 치과 가는 일을 편안하게 겪기로 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방식으로 사건을 넘어서는 마음에 대해 거의 터득했습니다. 당신이 하고자 선택하는 더 중요하고 커다란 경험 덕택에, 자신의 두통을 온통 깜빡 잊어버리던지, 혹은 일시적인 실패를 무시하게 됩니다. 단계3이라 부르는 이 과정은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삶에서 되풀이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당신이 예전에 사용했던 방식이 아니어서, 당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 당신의 몸이 자신을 어떤 존재 상태를 유지하게끔 자동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정도는, 당신이 드러내는 언약과 결심의 정도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사소할지라도 이런 과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보았습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존재가 되기로 결정한다면, 그 결정이 평화로움이던지, 즐거움이던지, 번창함이던지,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당신을 멈출 수 없습니다.

또한 당신이 우울함이던지, 당황함이던지, 불가능함이던지, 이런 상태로 있기로 결정한다면,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당신을 멈출 수 없습니다.

슬프기로 작정한 사람을 활기차게 해보려 한 적이 있나요?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은 시간 낭비하고 있습니다.

평화롭게 있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어떤 상태로 있기로 결정한다면(즉, 당신이 결정을 내린 어떤 ‘존재 됨됨이’를 표현하고, 경험하고, 이행하는 것. 決斷然後 變化之道也)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던지 당신의 결정을 고수하겠다고 한다면, 당신의 몸은 조만간 당신의 경험에 그런 존재됨을 만들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자동적으로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당신의 마음도 또한 이 행위에 합세하게 됩니다. 당신은 결국 몸과 마음과 영혼이라는 삼중의 존재로, 당신이 존재됨의 결단을 내려서 그것을 고수하게 되면 당신 존재의 세 가지 측면이 곧 같이 활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존재됨의 결단’이, 모든 기능적 차원과 존재의 모든 면에서 반응기에 불을 붙이는 방아쇠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창조’라는 엔진을 점화시키는 열쇠입니다.

일단 ‘존재됨의 결단’을 내리면 당신이 되고자 추구하던 것과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삶에서 자동적으로 몰아내 버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을 거의 잠재의식 수준에서 할 것입니다. 즉, 당신은 당신이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과 연관이 있는 가족, 친구, 동업자들이 심지어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긴 하는 거야?”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사실 당신도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은 자동기능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자동기능은 당신의 본능, 반응, 내부 분별력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놔두어라, 신이 알아서 하도록”라고 말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담배에 손이 가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불현듯 아무 이유 없이 내려놓고는, 다시는 담배를 집어 들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어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는 그들과 교제를 하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혹은 일을 하러 가다가 방향을 바꾸어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는 일터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 내부에서 무언가 당신에게 다만 “더 이상은 안돼”라고 말할 겁니다. 어떤 직관적인 메신저는 매우 조용하고 간단하게 “이제 그만두고, 전진할 때야. 변할 때라고.”라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었던 걱정과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놀라지 마세요. 만일 당신이 선택한 ‘존재 됨됨이’에 집중하고 있다면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 뒤에 당신이 단지 어떤 친분관계를 그만두고, 다른 것들에 ‘끌릴’지도 모릅니다.; 어떤 물리적 환경을 벗어나, 다른 것들에 끌릴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직업조차 그만두고, 다른 ‘생계유지’ 방법에 끌릴지도 모릅니다. 얼마 안 있어 결국 ‘생계유지’하는 일을 그만둘 겁니다. 그리고는 을 영위해 나가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당신을 ‘건전한 생활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움직임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진정한 자기’를 창조하고 발현하는 과정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과정을 신뢰한다면 ‘존재 됨됨이’(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한 가지 이상)를 채택하고, 그것을 경험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내적인 존재 상태는 자신의 외부 체험 상황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고, 없게 될 것임을 발견할 것입니다.

치과의사의 의자나 차안의 시끄러운 아이들, 혹은 그 이상도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을 겁니다. 당신 삶의 외부 환경이 더 이상 당신 영혼의 내적인 체험을 조종하거나 창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제거하고 싶어 하는 이 외부 조건들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빠져나오거나 제거해버릴 것이며, 그러고 나서 가슴 뛰는 일들에 열중하고 있을 겁니다.(그들은 더 이상 파괴적이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는 상관없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자기가 누구인가’에 걸맞게 당신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게 될 겁니다.

아직 당신이 이 과정을 신뢰하기 위해 알아야만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