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조 5단계

폼(형식)이 저절로 창조되게끔 하기.

우리는 마침내 형식이라는 질문까지 도달했습니다. 당신의 봉사는 어떤 형식을 띄고 있을까요?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 된다는 게 무엇처럼 보일까요?

당신 마음의 가장 깊숙한 소망을 물질적인 형식으로 바꾸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의 소망을 미리 결정되어 있는 형식에 맞춰 나가는 쪽을 추구할 수 있고, 아니면 형식이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그대로 놔둘 수도 있습니다.

후자 쪽을 강력히 권유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소망이 특정 형식으로 만들어져 이루어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실상 신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택사항을 열어둔다면, 우리는 불가사의한 창조를 위한 여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봉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물어보는 첫 번째 질문이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입니다. 이 질문은 사람들이 맨 나중에 물어보아야 것입니다.

맨 처음 ‘빛을 가져 오는 사람’이 존재하는 방식인 ‘존재 됨됨이’쪽으로 지향하고, 그러고 당신의 삶의 ‘행동’을 그런 존재 상태에서 흘러나오도록 하세요.

무엇이 그 ‘존재 됨됨이’일까요? 그것은 당신이 상상하는 무엇이든지입니다. 당신이 선택하고, 결정하세요.

당신이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빛이 무엇인가요? 즉 당신이 다른 분들에게로 가져와서 불러내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요?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게 무엇이 됩니까?

당신 내부에서 불타고 있는 어떤 것은, 언젠가 충분히 풀어지고 충분히 발현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킬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얼까요? 그게 무엇처럼 느껴지십니까?

기억하실 것은 그것은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되고 있는 어떤 상태입니다.

사랑하기 인가요? 돌봄입니까? 치유입니까?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던 관계없이 더 많은 상태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신비로움은 당신이 더 되어있을수록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더욱 더 제자리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 당신이 더욱 더 당신답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믿어보십시오. 아주 효과 만점입니다.

당신은 어떤 것이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방법들 즉 형식들이 저절로 갑자기 그저 나타날 뿐이라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아마 여기 한 가지 실례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분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치유’라 불리는 상태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기 영혼에서 깊이 느끼는 ‘존재 상태’였고, 그는 그것이 발현되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 그는 힐링을 ‘하도록’ 할 수 있게 하는, 소위 ‘현실 세계’에서는 아무런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지요. 그는 구인 광고란을 뒤져 보았지만, “유수 국영 기업체에서 힐러를 원합니다.”라거나 “지방 기업체에서 멋진 신입 사원 대우 힐러를 구합니다.”라는 구인 광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낙담했지만 기가 꺾이지 않고, 그 자신의 ‘사무실’을 열어서 자기 자신의 사업을 열기로 결정했지요. 아직 그때 그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내는 데 몰두할 어떤 형식이나 틀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형식을 만들었지요. ‘크리스털 힐러’, ‘안마 치료사’, ‘영적 상담사’, 자신이 창시한 교회의 ‘뉴에이지 목사’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형식을 만들어서는 잘 될 거라고 보고 사업을 시작했지요. 모두 다 괜찮았습니다. 거의 누군가 오지 않았다는 것만 빼고는. 왔던 몇몇은 효과가 별로 신통치 않았기에, 사례를 거의 주지를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사례금을 요청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결국 그의 모든 수단들을 글자그대로 단지 편집했을 뿐이었고, 또 그는 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을 요청하거나 요구하기에는, 죄의식까지는 아니지만 부끄럽거나 난처하게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문자 그대로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삶은 흐물흐물한 젤리(Jell-o)로 바뀌었지요. 동업자는 언뜻 보기에 그가 ‘중년의 위기’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이 보여 ‘미쳤다’고 단언하면서 떠났습니다. 오랜 친구 역시 그를 정신이 돌았다고 생각했지요. 한때는 그 자신을 정말 잘 돌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저런 형태의 정부 보조금이나 후생 복지에 기대어서 살아가거나 혹은 잘해야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갔지요.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 하기를 바라던 것을 행하고 있었기’에 그런 희생을 기꺼워했습니다.

잘 될 때에 의거하여, 그는 정말이지 자신의 지금 생존 상태를 위와 같은 견해로 정당화시키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의 내면 깊숙이 무언가 그에게 어딘지 ‘허위’, 거짓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몰랐던 공식은 아무도 그에게 말해줄 수 없었던 비밀이었지요. 그 자신에게 말했던 것처럼, 신이나 사람에게 봉사한다는 것이, 때로는 쓰라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곤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괴로워서도 안 된다고.

그렇지 않습니다.

비밀은 형식을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가지 않는 것이랍니다. 형식이 저절로 창조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원리 5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