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
2.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충분히 없다.
3. 그 부족한 것을 얻기 위해, 인간은 반드시 서로 경쟁해야만 한다.
4.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더 낫다.
5. 다른 오류들에 의해 창조된 심각한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서로 죽이는 것은 적절한 것이다.
◆ 뛰어넘는다는 것은 한계를 넘어 간다는 것이며 지나쳐 간다는 것이다.
◆ 뛰어넘는다는 것은 완전히 거부하거나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뛰어넘는다는 것은 언제나 ??더 확장되기??를 의미한다.
◆ 신성한 영감inspiration이란 것은 모든 인간의 타고난 권리이다.
◆ 행동의 기반인 믿음을 다루지 않고선 장기적으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
◆ 자신의 세상형을 전제로 하면,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믿음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믿음을 확장시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믿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다.
◆ 신화가 흔한 이야기가 되었고 마침내 믿음으로 둔갑하게 되었다.
◆ 가슴은 마음과 영혼 사이의 다리이다.
◆ 마음에서 가슴으로 들어가면 영혼으로 점프할 수 있다.
◆ 조직화된 종교는 개인이나 집단에 배타적이다.
◆ 신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유의지를 뺏도록 자유의지를 준 것이 아니다.
◆ ‘신의 법’은 자유가 주어지면 사람들이 종교 지도자가 바라는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기반 한 것이다.
◆ 원래 종교란 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신에 더 가까이 가도록 하고 신성과의 교감을 창조하고, 사람들을 서로 가까이 가도록
하고 공동체란 느낌과 통합이라는 느낌을 갖고, 또 위대한 기쁨과 더 큰 자유의 느낌을 가져다주도록 만들어 졌다.
◆ 삶은 결정한 것을 전해주는 전달자이다.
◆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함에 의해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라 그러면 너희 내부 세계가 변하게 된다. 너희 내부 세계가 변할 때, 너희가 ‘접촉하는’ 외부 세계가 변하게 된다,
◆ 새로운 영성을 탐구할 때, 단지 종교집단 뿐만 아니라 너희의 모든 집단과 교류해야 한다.
◆ 사람들은 성인들이 위대한 진실을 낳기 위해 ‘시도했다’고 말하지 않고, 위대한 진실을 ‘낳았다’고 말한다.
◆ 너희가 자멸적인 방향을 바꾸는데 일조하고자 한다면, 너희들은 ‘시도’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
◆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하다고 선언하는 자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마라.
◆ 장소와 방법을 제공하며 너희에게 경의를 표할 것을 요구하는 자들을 주의하라.
◆ 내부 경험이 외부 표현으로 이끌어질 때, 원(圓)은 완성된다.
◆ 네가 알고 있는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 사실, 네가 접촉한 모든 사람이 너의 모범에 영향을 받는다.
◆ 믿음 때문에 서로를 짓밟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 종교는 통일성을 창조하는 대신, 분리를 낳았다.
◆ 조직은 대개 스스로 쓸모없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 새로운 영성이란 지금 형태의 조직화된 종교를 확장하는 영성이다.
◆ 우리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하는 게 아니다, 신의 이익과 인간의 이익은 서로 다르지 않고 동일한 것이다.
◆ 관찰은 ‘무엇이 어떠하다(what’s so)’는 것이다. 판단은 ‘그래서 어쨌다(so what?)’는 것이다.
◆ 우리의 모든 믿음에 깊은 감정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 우리들은 생존하고 싶다면 서로 ‘하나로 행동’하여야 한다.
◆ 치유란 것은 너희가 너희의 하나임을 아는 것이다.
◆ 하나임(oneness)은 같은 것(sameness)을 의미하지 않는다.
◆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한명의 ‘구원자’가 아니라, ‘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많은 수인 사람들이다.
◆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아프게 해서 당신은 이를 치유하기 위해 저를 아프게 해야 하나요?
◆ 공격하는 자는, 국가든 집단이든 개인이든 자신을 공격하는 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방어하는 자로 본다.
◆ 저는 당신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 사람들이 어떤 문제로 인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그 문제 자체인 경우는 거의 없고 사실 ‘그 누구도 그것을 이해하지 않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인 것이다.
◆ ‘실수’의 문제는 종교계에서나 종교적 맥락에서 단순히 ‘기능상의’ 실패라기보다 도덕적인 실패와 동일시된다.
◆ 종교나 혹은 도덕을 바탕으로 한 문화에서는 정상적인 인간의 실수가 ‘신에 대한 죄’로 여겨질 수 있다.
◆ 종교법에 근거해서 민법을 만든 나라에서는 아주 사소한 실수를 도덕적 타락으로 본다.
◆ 경전 내용의 기능적인 지적에 종교적 믿음이 충실한 사람들은 공격당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라고 느낀다.
◆ 제가 신의 법칙이나 예언가들을 버리지 않고 대신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 만일 ‘믿음’을 변화시킨다면, 너희들은 원천적으로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 한번 어떤 것을 믿게 되면, 너희는 그것이 틀렸다고 증명될 때까지 믿게 된다.
◆ 인간이 신을 ‘비위 맞추기’위해 한 것은 비인간적인 것이다.
◆ 우리들은 자신의 장난감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사로 싸우고 있다.
◆ 신이 성공하기 위해서 무력을 쓸 것이라고 상상함으로써, 신이 남성일거라고 결정내린 것이다.
◆ 몽유병환자처럼 걷고, 꿈속에서 살고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걸 보게 된다.
◆ 문제들은 도덕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도덕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 진실을 찾는데 지겨워하지 말고 진실을 발견하는데 지겨워하지 마라.
◆ 서로를 파괴하는 능력은 꽤 발달시켰으나 서로 잘 지내는 능력은 그랬지 않았다.
◆ ‘옳고’ ‘그름’의 초창기 관념은 자신의 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하는가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왔다.
◆ 무신론은 후천적으로 습득된 반응이고 자연신론(Deism)은 당연한 반응이며, 직관적인 ‘앎’이며, 세포차원의 깊숙한 곳에서의 인식이다.
◆ 인간 사회는 신으로부터 왔다는 ‘지시’를 가지고 ‘도덕’을 만들어 낸다.
◆ 너희의 도덕성은 작동하는 것과 작동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 인류라는 집단으로서, 되고자 하는 것이나 하고자 하는 것이나 가지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다.
◆ 도덕적 지침이 현실의 삶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발견할 때, 정작 그 도덕이 기반을 둔 믿음을 바꾸지는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은 도덕을 바꿔버린다. 또 그들은 상황에 맞게 편의적으로 자신의 도덕(즉, 자신의 믿음을 ‘적용’시키는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도덕은 단지 표현된 믿음이니 그들은 위선자이다. 그들은 믿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미치게 만든다.
◆ 모든 기능상의 문제를 부패한 도덕 문제로 이름 붙이기를 고집한다.
◆ 남쪽으로 운전해 산호세 방향으로 가는 것은 단지 원래 가려는 곳인 시애틀에 도달하지 못하는 ‘기능성’의 착오이지
‘도덕성’의 착오는 아니다. ‘잘못’되었다고 말해질 때, 도덕성의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신의 의지’를 좌절시킨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좌절된 것은 ‘너희의’ 의지이다.
◆ 삶은 그 기능성에 적응함으로써 지속하게 된다.
◆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어 그들이 갈구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라. 그리고 그들이 간청하는 리더십을 제공하라
◆ 세계 사회의 외부적 평화는 너무나 연약하다. 왜냐하면 너희 세계 사회의 내면의 평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오래된 진리에 대한 새롭고 더 큰 이해와 그것과 함께할 새로운 진실을 가져다줄 영성
◆ 너희의 정신적 구조물과 사회 규약의 대부분은 두려움에 바탕한다. 너희들은 정신적 구조물과 사회 규약을 이용해서 자신을
무엇인가로부터 보호한다. 너희의 ‘도덕’은 너희들이 ‘잘못’을 하는 것을 보호해주며 (신이나 인간에 의해) 벌 받는 것을
보호해준다. 너희의 ‘정의’는 너희들이 ‘부당하게 취급받는 것’으로부터 보호해준다. ‘소유권’이라고 불리는 구조물조차도
보호물이다. 소유권이 자신의 물건을 빼앗아 가는 것을 보호해 준다고 상상한다. 이러한 보호물들 중 어떤 것도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다.
◆ 영혼은 신성의 영(Divine Spirit)이 개체화 된 것이다. 영혼은 집중된, 공간화된 우주적 생명 에너지이고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특정한 진동수로 진동한다.
◆ 영혼이 더 큰 버전이 되는 방법은 개체화된 형태로 상대성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다.
◆ 너희는 몸 ‘이상’이 아니다. 너희는 ‘전혀’ 몸이 아니라, 영혼이다.
◆ 모든 물리적 대상 ‘속’으로 방사된다, 그래서 물리적 대상이 창조된다. 너희들이 빛이나 영혼이라고 부르는 이 에너지 장은 에너지가 창조한 물리적 대상을 감싸고 그 대상을 밖으로 영원히 확장시킨다.
◆ ‘새로운 계시’라고 불리는 것은 ‘정보’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설명이 새로워서이다.
◆ 너희가 신과 함께 걷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다면 너희는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 “우리가 신의 역할을 해야 하나?”
◆ 유전자학은 ‘신의 영역’이지 의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할 때, 그 문제는 구름처럼 흐려진다.
◆ 아이들처럼 너희들은 단기적인 결과에만 주로 관심을 갖는다. 너희들은 단기적인 사고로 충족될 수 없는 장기적인 목적을 확인하기 시작하여 순간적인 만족이 장기적인 만족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 어느 수준에서는 분리된 존재도 서로 협동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자신이나
자신의 소유물이 위협당하는 것을 느낄 때면 언제나 매우 재빠르게 ‘적자생존의 원칙’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은 “나의 생존이 제일
우선이며 당신의 생존은 내가 동의하고 내가 여유가 있는 한 그렇다”식의 사고이다.
◆ 높은 의식수준은 낮은 의식수준보다 ‘더 낫지’ 않다, 단지 더 높을 뿐이다.
◆ 화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치유해주는 것이다. 화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것이 화를 긍정적인 감정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화는 너희가 원치 않는 무언가를 제거하도록 도와주며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 너희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화의 표현이 아니라 화가 표현되는 방식이다. 화가 표현되어도 물리적 폭력이나 언어적
폭력을 전혀 담지 않게 되는 방식은 많이 있다. 이런 식으로 화를 분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성숙의 표시이다.
◆ 화는 진정함과 진실성이기 때문이고, 화보다 더 위대한 치유자는 없으며, 화보다 조화에 이르는 더 좋은 지름길도 없기 때문이다. 멋지게 표현되지 않고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으로 표현된 화는 치유하지 않으며 상처만을 준다.
◆ 인간은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자신이 혼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존, 보호, 방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해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많은 인류는 자신이 하는 것을 바꾸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 집단적으로 물어야한다. 이것이 우리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가? “이것이 유일한 행동방식인가?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 개인적인 마스터를 쫓지 말고 집단적인 의식을 개인적으로 마스터하라. 그리고 인류라고 불리는 집단을 깨우기 위해 집단적으로 일하라. 세계를 파괴하거나 구하는 것은 모두 집단적인 행동이다.
◆ ‘먼저’ 세상을 바꾸려고 함으로써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먼저’ 자신을 바꾸려고 하여라. 존재 상태를 변화시키면 행동은 ‘자동적으로’ 변할 것이다.
◆ 개인적 변화 노력을 지구 행성 변화라는 결과와 관련시키지 마라.
◆ 그들의 경험이 어떠해야 한다고 너희가 생각하는 바가 아닌 너희의 경험이 어떠했는지를 나누어라.
◆ 사람들이 요구한다면 그들에게 가르쳐라, 그러나 그들에게 ‘너희’가 그들의 답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지 말라, 그들이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쳐라.
◆ 계속하게 해주는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것이 결과라면, 결과가 ‘부족’은 너희들에게 계속하지 ‘않게’ 하는 좌절감을 맛볼 것이다.
◆ 다른 사람이나 주위 세상 변화는, 다른 사람의 변화를 낳고자 ‘추구’해서가 아니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변화는 자유의 행위이지 복종의 행위가 아니다.
◆ 간디는 내부로부터 존재 상태를 달성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의 외부적 ‘행동’이 세계를 변화시킨 그런 ‘행동’이 되었다.
◆ 하고 있는 무언가를 통해 존재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긴 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한시적이다.
◆ 깨달음으로 가기 시작하는 것은 그 ‘순간’이 나타나기 전에 ‘너희가’ 어떻게 될지를 결정할 때이다.
◆ 외부 세계가 하고 있는 것은, 네가 되고 있는 것에 매우 빈번히 영향 받는다는 것이다.
◆ 미리 결정을 하라. 그리고 자신이 ‘되기’를 고집하라, 세상이 어떻게 되더라도.
◆ 대부분의 인간들이 너무나도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 사는 것도 두려워한다.
◆ 상과 벌은 적응성이라는 삶의 원리를 표현하기 위한 인간의 시도이다.
◆ 행동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말고 너희의 믿음을 바꾸려고 노력해라.
◆ 공짜로 너희는 받았다. 그러니 이제 공짜로 주어라.
◆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삶으로 그들이 바로 길임을 선언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첫 번째 도미노가 되기를 선택해야 한다.
책이 품절 되어서 어쩌나 했는데
요약본이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