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 #1

삶에 정해진 목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 말은 삶에 정해진 목적이 있어서, 그 정해진 목적을 찾아서 드러내고, 배우고, 해결하는 것을 직무로 여겨, 어떻게 해서든, 어느 때든, 어디서든, 정해진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실천하려는 많은 분들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지요.

이것은 또한 이미 삶의 목적을 발견했었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여기는 몇몇 분들에게도 충격적일 수 있지요.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도 삶의 목적을 실제로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그들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를 남에게 들었고, 그걸 목적으로 받아들였답니다.)

그러나 모든 삶에는 ‘정해진 목적’이 전혀 없습니다. 삶은 정해진 목적이 없습니다. 삶에 정해진 목적이 있다면 누가 그것을 하나로 지정합니까? 그리고 만일 신에 대해서라면, 왜 신이 정해진 목적을 만들어서는 50년 동안 우리더러 그것을 찾도록 했겠습니까?(사회로 봐서는 5만년동안) 그리고 만일 신이 우리한테 찾지 못하게 하고서 답을 주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 모두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만일 신이 이미 그렇게 했다고 주장한다면, 요즘 세상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은 것입니다.

아니요, 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삶의 정해진 목적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은 이유는 삶에 정해진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에 정해진 목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세요.

삶 자체가 “열려진 책”이 되는 것은 바로 신이 삶의 페이지 속에 그의 목적을 그려 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책은 우리가 써넣는 책입니다. 어떤 목적이든 우리가 선택하여 결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신이 목적을 결정하였다면― 신이 계획에 따라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우리가 그 정해진 목적을 찾고서 찾고 또 찾는데 수년, 수십 년, 수백 년을 소비하도록 하겠습니까?

다시 한 번, “그래도 신은 삶의 목적을 공표하였다”라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분에게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 만일 그렇다면, 신은 일처리를 매우 서투르게 처리한 거지요. 왜냐면 주변을 살펴보면 아무도 그걸 찾지 못했음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 약간의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삶의 목적을 알고 있는데, 오로지 나머지 모든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고 여깁니다.

좋아요, 물론 그것이 지구상의 주요 종교들의 대부분이 취하고 있는 자세랍니다. 이 종교들은 자신들이 삶의 목적을 알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종교중의 한 둘은 삶에 목적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특정 종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며, 우리가 신을 매우 기쁘게 하면 구원받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그 특정 종교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의 불길 속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조직화된 종교가 수백이나 있다는 게 사실이 아니라면 문제가 될게 없겠지요.

진정 신은 일을 이렇게 서투르게 처리했을까요? 만일 신이 진정으로 삶의 목적을 만들어놓았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했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와 교류를 하는 것이 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혹은 우리가 이 모든 목적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단순히 정해진 목적이 없기 때문인 것 같지 않은가요?

사실, 그것이 바로 실상입니다. 정해진 목적이 없는지 명확해지지 않고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납득하기 어렵겠지요.

신은 우리들이 삶의 목적을 만들기를 바랐기에 정해진 목적이 없는 것입니다. 신이 만일 미리 목적을 만들어 놓았다면, 신은 우리에게서 삶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기회이며 위대한 도구를 빼앗는 것입니다.

왜냐면 당신도 알다시피 삶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반면에 ‘기능’은 가지고 있습니다.

‘목적’과 ‘기능’은 전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줄 목적으로 째깍거리는 기능을 합니다. 차는 사람들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킬 목적으로 내부의 폭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데울 목적으로 음식 분자들을 매우 빨리 진동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미리 정해지지 않은 목적이 없었다면, 삶은 특정한 방법으로 기능합니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목적을 결정하도록 삶을 기능적으로 만든 이유입니다. 달리 말하면:

당신의 기능은 당신 삶의 목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자기 자신을 창조합니다.
진정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 있는지
당신이 결정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신은 창조를 하고 또 새롭게 자기 자신을 재창조하는 영원한 과정에 있습니다. 신은 매순간 자신이 다음에 무엇이 될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의 아주 멋진 기능입니다. (사실, 이것이 신의 ‘유일한’ 기능입니다.) 이것이 순수 창조입니다.

(이 진리에 대한 더 나은 혹은 완전한 이해를 하려면 신과 나눈 이야기 1권을 참조하세요)

이 원리를 여기에서 말한 것은 신이 당신의 삶에 어떤 정해진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걸 이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신은 당신이 그걸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존재 이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당신이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았지요.

 

그래서 1 단계는 당신에게 삶이 무슨 의미인지 결정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만일 당신이 저 질문에 대답하지를 못한다면 더 넓은 쪽으로 가 보시죠.: 일반적인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에 다루기 힘든 부분이 있네요... ‘대답을 찾기 위해 어떤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마세요.’ 그냥 앉아서 혼자 힘으로 이것을 결정해 보세요. 자신에게 물어보지 말고, 자신에게 말하세요!!!!!

자신에게 일반적인 삶의 목적을 말하고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의 목적이 어떤 존재가 되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말하세요.

지금 이 제안에 대한 당신의 첫 번째 반응은 ‘압도당한’ 느낌일 겁니다. 마치 “내가 완전히 압도당했군!”이라는 것처럼...

당신은 이 주제가 단지 너무 무겁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 주제가 당신의 이해 영역 바깥에 있다고.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순간이 지금만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진지하게 삶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를 겁니다. 그것들은 당신에게 하도 빠르게 법석거려서 서 무슨 생각이 스쳐지나갔는지도 모를 겁니다. 그런 과정을 지속되면 곧이어 분별하기 시작할 겁니다. 즉, 당신의 마음이 불리한 생각들은 던져버리고 잽싸게 몇 가지 유리한 생각들만 남기기 시작할 겁니다. 이렇게 몇 가지로 줄어들게 되자마자 곧 더 줄이게 될 겁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 자신의 지혜에 맡겨놓으면, 당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당신이 생각하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게 됩니다.

말하자면 당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신이 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음을 아는 것은 매우 대단한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모르면서 지식 주변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또는 다른 방법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의 절반을 모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발견해내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을 알고 있음을 자신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이고, 당신이 그 문장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세요.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발견해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걸 알고 있음을 자기 자신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삶의 목적을 당신이 알지 못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는 당신의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의 목적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자신의 대답이 옳을 것일 수도 있다고 정당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용이하다는 겁니다.

이 이유는 당신이 아직도 ‘정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 그리고 만일 그렇다 해도, 당신은 어쩌면 제대로 알아맞힌 적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정답’같은 것은 ‘없’습니다!!!!!!

삶의 기능은 질문에 해답을 주는 것인데, 당신이 질문에 한 대답이 바로 ‘정답’입니다.
예... 신은 당신에게 그런 대단한 권능을 주었습니다.
예... 신은 당신에게 그런 대단한 자유를 주었습니다.
예... 신은 당신에게 그런 대단한 창조력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이 말을 믿지 않고, ‘삶의 목적’을 찾아내는데 긴 세월을 낭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삶(신)은 당신이 그 목적을 결정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 전체적인 과정이나 원인,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은 단지 교안대로 따라주세요.

이 모든 것이 뒤에 더욱 명확해질 것입니다. 이 책은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우주의 형이상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몇 가지 진술에 신뢰를 보내고 단순하게 교안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됩니다.

 

교안(敎案)은 :

자기 삶의 목적을 명확히 하시오.

지금 그것을 하세요. 바로 지금, 당신의 삶의 목적을 적어 보세요.

‘목적’을 선언하여 보세요.

앞서 제안했듯이, 거창한 선언으로 시작해야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다음 문장들을 완성시켜 보세요.

일반적인 삶의 목적은...

                                                                        
                                                                        
                                                                        
                                                                        


그리고 다음 문장을 완성시키세요.

내 삶의 목적은...

                                                                        
                                                                        
                                                                        
                                                                        

하셨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계속 하지요.

뭐라고요? 아직 끝내지 못하셨다고요? 곤란하시다구요? 그것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요? 신과 나눈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세요. 이번에는 메모를 하세요. 그리고 이 책의 첫 번째 페이지를 다시 읽어보세요. 필요하다면 더 많은 메모를 하세요. 이해한 것 같지 않은 것을 철저히 살펴보세요. 또는 이해가 되었지만 그렇게 적용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당신을 할 수 없게 하는지 철저하게 살펴보세요.

이것이 본질적으로 당신을 매우 유익하게 할 과정입니다.

일반적인 삶의 목적과 당신 삶의 목적을 명확하게 진술할 수 있다고 느낄 때 계속 진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