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조경숙님의 번역을 무시해서가 아니라(실제로도 확인해보면 기발한 번역이 무지하게 많음) 약간의 오류로 혼선이 있을 수 있음의 실례가 될 수 있군요.

조경숙님의 번역 원문 - 지주님과 나의 보완

To say that something―a thought, a word, an action―is "wrong"
어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그르다」는 것은 - 어떤(누군가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would be as much as to tell you not to do it.
너희가 그것들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상대(2인칭)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To tell you not to do it would be to prohibit you.
그것들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희 자신을 금하는 것이다. - 상대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금지하는 것이다.
To prohibit you would be to restrict you.
너희를 금하는 건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며, - 상대를 금지하는 것은 상대를 제한하는 것이다.
To restrict you would be to deny the reality of Who You Really Are,
as well as the opportunity for you to create and experience that truth.
자신을 제한하는 건 「참된 자신」 이라는 실체를 창조하고 체험할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 상대를 제한하는 것은 상대의 존재, 즉 (상대의)진실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만의) 진실(truth)을 창조하고 경험할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 문장에서 주어가 ‘To say’ 즉 말하는 것이니 둘째 문장도 어떤 말을 표현하는 것이지 지금 책을 읽는 독자에게나 닐에게 언급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즉 ‘옳다 그르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이미 상대에게 그것을 '하라' '하지 말라'는 것의 다름이 아닌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you 라는 게 화자의 상대를 지칭하면 쉽게 뜻이 통하는군요.
위의 글 전후의 맥락은 신은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 한 적이 없고 인류에게 선택의 자유로써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만일 시비를 이야기 하는 것은 상대의 자유와 진실을 체험할 기회를 빼앗은 것이니, 우리에게도 복종보다는 체험의 자유를 주었다고 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수정한 것으로 전후의 원문을 연결하면....

그렇다면 너를 가르친 사람들이 틀렸다. 나는 한번도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라」거나 「하지 마라」는 걸 설정한 적이 없다. 그렇게 한다면 너희가 받은 최고의 선물, 즉 너희가 원하는 대로하고 그 결과를 체험해볼 기회와, 너희가 「참된 자신」의 모습과 닮은꼴에 비추어 자신을 새롭게 창조할 기회와, 또 자신의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더욱더 고귀한 자신을 만들어줄 공간이란 선물을 빼앗는 것이 되리라.
어떤(누군가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그(상대)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상대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금지하는 것이다. 상대를 금지하는 것은 상대를 제한하는 것이다. 상대를 제한하는 것은 상대의 존재, 즉 (상대의)진실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만의) 진실(truth)을 창조하고 경험할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내가 너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들이 내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지옥으로 보내리라 주장한다. 무슨 그런 자유의지가 있단 말인가? 이런 주장은 우리 사이의 진짜 관계가 아닐 뿐 아니라, 신을 조롱하는 짓이기도 하다.


마침 오늘 리한님과의 운영회의에서 오고간 이야기가 이런 것의 실예가 될 수 있군요.(운영회의 게시판의 회의록 참고)

자칭 크리스천이라는 '갑'이라는 분이 실제로는 노동자를 착취해 돈을 벌어서 십일조를 내는 분이 있었는데,
갑에 관련하여 리한님 曰
“님은 크리스천이세요? 라고 하는데, 그 분이 그렇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 사람(갑)을 아는 거에요. 나는 이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보이고. 나는 크리스챤입니다라고 말할 때에, 대략 3만 5천 가지의 조건이 있는 것이여요. 그런 갑이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노동 착취하여, 십일조를 낸다면 님은 돈 문제 빼고, 크리스천이군요. 라고 하고 그렇지만 이것이 빠지면 크리스천으로서 아구가 맞지 않는군요. 이게 사실상 '갑'님은 크리스천이라 말할 수 없는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신다구...” 라고 갑에게 크리스천은 이러이러 한 것이라는 기본적인 규정(일종의 지도Map)을 (35000가지나..ㅋ) 제시하신다고 하는데.

위의 글의 맥락을 적용한다면, 리한님이 갑이 (크리스천의 규정에 비추어) ‘그르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갑에게 그것을 하지 마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그 갑이 체험할 진실을 막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엉터리 크리스천으로서의 체험을 통하여 오히려 남들에게 히틀러식 거울일 수도 있으며,,,오히려 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일깨우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라면 하나의 방법으로 당신은 왜 착취한 돈으로까지 헌금을 하느냐고 물어서, 만일 천국으로 가기위해서 그런다고 한다면 당신이 지금 하는 방식으로는 천국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고 나의 진실을 말하겠습니다.(혹은 그분이 동의하는 성서의 구절을 인용하여서..) (또 하나의 방법으로 갑에게 당신 스스로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착취한 돈으로 십일조를 내는 것을 어찌 생각하고 있는가를 묻고선, 만일 그가 당연하다고 언급을 한다면 그 견해의 근거를 다시 확인하는 질문을 하여서 그 근거가 엉터리일 수 있음을 일깨우는 방법을 할 것이지요.)
즉 저는 그가 그르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천국(시애틀)으로 가고자 한다면서 ‘갑’님 당신은 다른 길(새너제이)로 향하고 있다고 ...단지 방향이 엉터리라고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이 선택한 길을 가는 것은 님의 자유라고 덧붙이겠지만..